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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스토리] 낭만과 젊음의 패션거리, 명동의 변천사!
 
박상영 기자 기사입력  2016/09/21 [11:50]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 상업지구로 성장한 명동은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는 그야말로 인생의 거리로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다. 발길 닫는 곳마다 뽐내고 싶은 욕구를 떨쳐버릴 수 없는 곳~ 명동은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 명동의 랜드마크인 명동성당의 야경(블로거 7303jsw님의 사진)

 

명동의 명칭은 조선 시대 한성부 5부 49방 중 남부(南部)의 명례방(明禮坊)에 속하였으며 명례방골 또는 종현(鍾峴)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명동이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주택지로 밀집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후 광복과 6.25사변을 전후하여 서울의 문화예술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문화인들이 명동의 다방과 술집 등에서 인생을 토론하면서 불운했던 한시대의 한을 풀었다고 한다.

 

▲ 1930년 일제강점기 시대의 명동모습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시대별 명동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보면서 오늘날의 명동의 모습이 단순한 명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명동을 실감나게 소개하는 데는 적지 않는 분들의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사진작가나 외국인 또는 내국인들이 촬영한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양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보인다. 놀라운 것은 닐 마샬로프 씨의 자료도 있고, 60년대 한국에 주둔했던 주한미군의 사진자료도 있다.

 

놀라운 것은 닐 마샬로프 씨의 자료도 있고, 60년대 한국에 주둔했던 주한미군의 사진자료도 있다.

 

▲ 1950년대 명동거리

 

1959년도 명동의 모습. 문치과라고 쓰여 있는 간판 옆에 작은 한옥에 문예서림이 보인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프랭카드 지점은 명동극장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당시의 거리모습으로 볼 때 명동이 얼마나 유명했었는지 짐작케 한다.

 

 

1968년 8월 7일 서울 명동 모습. 미인의원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아래 명동의 오아시스라고 불릴 만큼 유명했던 문예서림이 보인다. 오른쪽에 보이는 담장은 코스모스백화점을 짓기 위한 장소라고 한다.

 

 

유명한 닐 마샬로프 씨의 콜렉션에 있는 1969년 사진이라고 한다. 오늘날 명동이 패션과 뷰티의 거리라고 불릴 만큼, 당시의 많은 병의원이 오늘의 성형, 피부과의원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주한미군이 촬영한 <1970-09 Seoul, Korea> 사진. 공사 중인 옛 명동 코스모스백화점의 골조공사 모습이 보이는데 문예서림이 병·의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왼쪽에는 서울흥신소가 보인다. 70년대에는 남의 뒷조사나 사람을 찾아주는 흥신소라는 사설조사기관으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지금의 심부름센터와 비슷한 업체라고 생각된다.

 

 

독일 지리학자 에카르트 데게가 1974~76년에 촬영한 명동의 모습으로 예나 지금이나 인파로 가득매운 명동거리의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에 솔져블루 간판이 보이는데 세계적인 여배우인 켄디스 버겐의 솔저 블루(Soldier Blue, 1970)로 아마도 재 상영되는 시점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7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명동입구의 화려함.

 

75년 7월경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된 <위험한 침입자>영화가 명동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으로 볼 때 그때까지도 명동극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 유명 수제화 붐을 일으켰던 에스콰이어 제화점모습이 보인다. 명동극장은 보이지 않는다. 문예서림도 보이지 않고, 미인성형외과 같은 병·의원이 밀집했던 건물도 사라진 모습이다.

 

 

70년대와는 달리 1980년대 명동 모습은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어깨에 뽕을 넣은 패션스타일과 과도하게 화장을 했었던 시대로 80년대 전반에 걸친 여성들은 아주 특색이 있었던 같다.

 

80년대 중반경의 명동모습

 

거의 같은 장소에서 40년에 걸쳐 촬영된 사진들은 적게는 명동지역의 모습이지만 크게 보면 한국의 발전사가 담긴 소중한 사진들이다.

 

 

2000년대의 명동의 모습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사변이라는 격동기를 딛고 일어선 명동은 역사의 혼도 살아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점이다.

 

 

참고문헌

      『일제강점기 도시계획 연구』 (손정목, 일지사, 1990)

      『서울 육백년사』 3·4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3)

      『서울특별시동명연혁고』Ⅱ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8)         

        서울특별시(www.seoul.go.kr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명동입구 변천모습

        http://blog.naver.com/s5we?Redirect=Log&logNo=150182467730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jlove114&logNo=220716663961

       [네이버 지식백과] 명동 [明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5814&cid=46618&categoryId=46618

        http://www.youtube.com/watch?v=IXh1x9cRy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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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21 [11:50]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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