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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기록42] 산을 걷다 산을 품다 - 한국 100대 명산 완등기
 
김경수 오지레이서 기사입력  2018/08/31 [19:50]

중년 - 다시 찾아온 인생의 골든타임 - 지금은 내일을 설계하기 가장 좋은 때이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을 만들어 갔다. 추워도 더워도, 눈비가 와도 갔다. 끝은 새로운 시작점. 한 산을 넘고 또 한 산을 넘었다.

 

▲ 북한산 

 

온몸으로 산과 들의 속살을 봤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과 겨울도 빼어난 운치가 있다. 때론 대자연의 풍광에 압도되고, 때론 잘 닦인 오솔길에서 잊혀진 추억을 되찾았다. 산은 오른 만큼 멀리 보이고 세상은 경험한 만큼 많이 보이더라.

 

▲ 북한산 


2015년 6월 서울 북한산 도선사 광장에서 시작된 대장정은 피곤도 모른 채 한반도를 돌고 돌아 2017년 11월 마침내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서 멈춰 섰다. 총 산행거리 660km. 상·하행 평균시속 4km. 산행시간은 170시간 넘게 걸렸다. 거리로 치면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한반도 종단거리와 맞먹는다. 물론 집에서 100명산 들머리까지 오간 거리는 셈조차 어렵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 LA를 오간 거리와 맞먹지 않을까.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이 힘들어도 멈추지 않으면 끝은 본다.

 


오름의 반은 바람골 계곡물에 취하고, 나머지 반은 운무에 취했던 월출산 우중산행. 충주호의 악어를 보러 오른 월악산. 슈퍼스타와 팔짱 끼듯 설렌 마음으로 다가선 무등산 서석대. 용봉산 들머리 용도사에서 짱구아빠를 빼닮은 미륵불도 만났다.

 

▲ 수락산


험준한 산세에 놀라고 빼어난 비경에 놀란 구봉산. 금강송 빼곡한 두타산과 응봉산. 편백나무 가득한 축령산과 공작산. 여인의 품처럼 포근한 광덕산. 억새평원은 단연 천성산 신불산 재약산이 그만이다. 동악산 청류동 계곡에서 겨울채비로 바쁜 다람쥐 녀석에게 무시도 당했지만, 청명한 명지산과 청계산의 계곡물 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울린다.

 

▲ 응봉산 
▲ 광덕산


남한 최고봉 한라산(1950m), 제일 낮은 팔봉산(328m). 천년고도 경주 남산, 산행보다 곤돌라 타는 게 더 신났던 덕유산. 전남 전북 경남에 걸친 지리산 바래봉 반야봉과 주봉인 천왕봉. 들머리서 정상까지 1km도 안 되는 대둔산 덕룡산 팔영산 덕유산 용봉산 가야산(서산) 용화산.

 

▲ 한라산 
▲ 팔공산 

 

충북 전북 경북 삼도의 경계에 솟은 민주지산, 케이블카 덕에 호사를 누린 재약산 금오산 대둔산. 귀히 모셔 면회시간이 정해진 모악산의 정상석, 탐방로 이정표는 없고 산악회 리본만 펄럭이는 서대산. 경기5악 중 관악산 운악산 화악산 감악산까지 올랐으니 통일되면 개성(송도)의 송악산도 갈 수 있겠지.

 

▲ 내연산 
▲ 덕항산

 

이런저런 핑계로 흔한 것을 귀한 줄 모르고 소중한 가치를 외면했다. 지척에 두고 무심했던 도봉산과 수락산. 어른이 되어서야 다시 찾은 오대산 노인봉. 주례 선날 아침에도 가리산을 다녀왔다. 내소사 전나무 숲 피톤치드를 듬뿍 쬈던 변산, 나직하고 호젓한 유명산과 칠갑산.

 

▲ 도봉산

 

태백산 관악산 대둔산은 정상석이 커도 너무 크고, 황석산은 칼날 같은 능선을 가르는 황석산성이 압권이다. 누군가 태화산과 내연산에 조망이 없다지만 나는 봄향 가득한 들풀에 취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50번째 치악산을 오르고 청량산과 소백산에 다가설 쯤 산을 조금 알았다. 산악회가 이리 많은 줄도 그제야 알았다.

 

▲ 명지산

 

쉬운 산은 없다. 위험도 따른다. 방파제 테트라포드 같은 바위무덤이 발목을 잡는 두륜산. 청화산과 백덕산에선 폭설에 묻혀 멧돼지 발자국을 쫓다 길을 잃고 헤맸다. 일찍 봄 맞으러 갔다 도로 겨울을 만나 혼쭐난 풍혈을 품은 구병산.

 

▲ 무등산 


강천산의 정상석을 찾느라 금성산성 성곽 위를 갈팡질팡, 연인산 하산 길에선 폭염을 맞아 휘청거렸다. 장맛비가 토해내는 물길을 헤치며 올랐던 달마산, 첫눈 내리는 오서산 중턱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노인네 부부를 부축해 휴양림까지 하산하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이건 약과이다.

 

▲ 백덕산

 

원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리왕산. 화악산 정상 목전에서 두 팔로 땅을 짚고 암벽을 내려오는 하반신 장애여인의 투혼을 봤다. 정상 조망이 일품인 백운산(광양)에서 5백산을 넘게 오른 고수도 만났다. 40도를 웃돌며 한반도가 불타던 2017년 여름, 조계산 하산 중 탈진한 산객에게 주저 없이 물 한 병을 보시했다.

 

▲ 불갑산

 

덕항산 초입의 예수원 말고, 사찰이 대부분인 100명산과 친해지다 자비의 아이콘 부처님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가야산(합천) 해인사, 주왕산 대전사, 금정산 범어사, 오대산(비로봉) 상원사, 내연산 보경사, 천태산 영국사, 마이산 금당사, 용문산 용문사. 계룡산과 팔공산의 사찰은 셀 수도 없다.

 

▲ 설악산

 

연분홍 진달래가 온 산을 휘감은 함백산과 화왕산. 의암호 붕어섬이 손에 잡힐 듯한 삼악산. 9월 말에 찾은 불갑산과 선운산엔 상사화가 만발했다. 3월의 할미꽃과 동강이 부르는 백운산(정선), 가을 방태산에선 땀에 젖고 붉노란 단풍에 또 젖었다.

 

▲ 소요산 

 

삼나무 숲 가득한 방장산, 솔향 그윽한 황정산. 경기의 소금강 소요산, 청풍호반을 품은 금수산. 운장산을 오를 때는 조릿대의 호위를 받고 하산 길엔 주렁주렁 감나무에 눈이 호강했다. 도토리가 우박 때리듯 풍성한 오봉산, 단양8경이 굽어보이는 도락산. 산행보다 가을여행이 더 어울리는 10월의 문경새재 주흘산. 계절 산행의 묘미가 이런가 보다.

 

▲ 신불산
▲ 주흘산 

 

진달래의 명산 비슬산. 황매산과 가지산의 봄 철쭉군락. 여름이면 야생화 천국인 함백산. 가을 단풍이 빼어난 황악산 백암산 그리고 내장산. 명성산 화왕산 장안산 천관산의 가을 억새군락. 서해 낙조가 절경인 남도제일경 달마산, 한겨울 상고대와 서리꽃이 일품인 계방산. 전나무 숲 설산이 명품인 오대산은 제철에 꼭 다시 찾아봐야겠다.

 

▲ 축령산
▲ 용봉산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중년이라 기죽을 필요 없다. 매번 자연이 주는 보약 한 첩을 들이키며 산을 올랐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혼자 맞이하는 것도 필요하니 ‘나 홀로’ 산행이 나쁘지 않다. 최단코스를 원하면 거친 노면과 가파른 비탈쯤은 각오해야 한다.

 

▲ 월악산 

 

이것이 인생이다. 산에도 스승이 있다. 두타산을 뛰쳐 오르는 내게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한 자리를 지켜온 노송이 ‘뭐가 급해서 그리 바삐 가느냐?’고 물었다. 열정만 남겨놓고 욕심을 덜어냈다. 열정을 넘어서는 재능은 없다. 산을 오르며 나이를 먹었지만 나는 더 강해졌다. 나는 늙어 가는 게 아니라 익어 가고 있었다.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며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으며, ‘제31회 청백봉사상’과 ‘2013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상했다.

강연(명강사 제128호, 한국강사협회)과 집필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블랙야크 셰르파, 아츠앤컬쳐 편집위원, 돈키우스특강 고문 그리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 gskim3@gangbuk.go.kr ▪ www.facebook.com/gski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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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31 [19:50]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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