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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기록41] 레알 사막의 하루
 
김경수 오지레이서 기사입력  2018/07/18 [10:30]

눈을 떴다. 여기는 작열하는 사하라사막이고, 아타카마사막 달의 계곡 언저리이다. 모래폭풍이 살을 파고드는 고비사막이고, 마른벼락 치는 그랜드캐니언 대협곡이다.

 

 

종일 엄청난 양의 물을 마셨다. 레이스 전에 마시고, 레이스 중에 마셨다. 캠프에 들어와서 마시고, 자기 전에 또 마셨다. 자다가도 마셨다. 종일 마셔도 레이스 중에 소변을 보는 일은 드물다. 새벽 4시, 조심스레 텐트 밖으로 나왔다. 파란 새벽하늘에 가슴이 시렸다. 캠프 바깥을 향해 소변을 보고 다시 침낭 속에 몸을 묻었다.

 


어제 저녁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아침 6시 기상부터 출발선상에 설 때까지 할 일이 많다.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기 전까지 일과보다 더 복잡하다. 기지개 켜고 눈곱 떼기, 일어나 냉수 마시고 대변보기, 아침 식사와 식기 세척, 양치하고 짐 챙기기, 선크림 바르기. 당연히 대변을 본 후엔 물티슈로 배설구 주위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일 똑같은 몸동작과 흐르는 땀에 피부가 쓸려 레이스 중에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서양 선수들은 고열량 초경량의 식량과 장비로 무장하지만, 밥심으로 달리는 내 배낭의 레이스 첫날 무게는 10kg을 훌쩍 넘긴다. 채비를 마치고 텐트를 떠날 때는 놓고 온 장비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버스정류장에서 핸드폰을 놓고 온 걸 알았다면 집에 가서 챙기면 된다. 하지만 사막에서 한번 흘린 물건을 되찾는 건 불가능하다. 5박 7일 동안 260km를 달려야 한다. 더구나 꼭 필요한 장비라면 레이스 기간 내내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간혹 배낭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식량을 모래 속에 묻어버리는 선수도 있다. 잘 먹고 싶다면, 그 배낭의 무게는 선수 자신의 몫이다.

 


코스에 관한 정보도 미리 체크해야 한다. 레이스 거리는? CP(Check point)는 몇 개인지, 구간별 거리와 난이도, 혹시 강물을 건너는지. 급경사의 산악이나 빅듄(Big Dune)이 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구간별 제한시간과 전체 구간의 제한시간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부상이 아닌 정보 부족으로 제한시간에 걸려 탈락한다면 이보다 원통할 수 없다. 내가 갈 길을 알고 길 위에 서는 것과 멋모르고 쫓아가는 건 천지 차이다.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이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서 대자연과의 가혹한 교감이 시작된다. 엄청난 규모의 모래 산 빅듄, 끝이 보이지 않는 자갈밭 광야, 급경사의 산악지역, 무릎까지 차는 협곡 물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대자연에 압도된다. 50도를 육박하는 태양의 열기,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오지의 새벽 한기, 3천m가 넘는 고도를 달리면서 체력의 한계를 넘나든다. 그때 나는 가장 힘들었던 과거의 순간이나 소중한 사람과의 재회를 떠올리며 이 순간을 이겨낸다.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다. 하지만 물이 떨어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물은 생명수다. 그러니 출발 전에 충분히 챙겨야 한다. CP마다 물이 공급 되지만 체력과 난이도에 따라 CP와 CP사이에서 머무는 시간이 1~2시간에서 3~4시간까지 되기도 한다. 주로에서 다른 선수에게 물 구걸을 하는 건 강도짓이나 다를 바 없다. 2005년 고비사막 한가운데서 물이 떨어져 2시간 넘게 헤맨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배낭에 작은 물통 하나를 덤으로 갖고 뛰는 습관이 생겼다. 그건 내가 마실 게 아니라 비상용이다. 2010년 인도 뮤나의 밀림에서 물이 없어 흐느적거리는 독일 여자선수에게 이 물은 생명수였다.

 


주로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리본이나 푯대가 꽂혀있다. 하지만 한눈을 팔거나 딴생각을 하다 주로를 벗어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갈림길에서는 내가 갈 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 예전 북아프리카 모로코 지역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은 선수가 보름 만에 알제리에서 구조된 적도 있으니 허튼소리가 아니다. 물론 주로에는 7~12km 간격으로 CP가 설치된다. CP는 이탈 선수를 파악하고 물 공급, 기록 체크 그리고 선수들의 휴식 공간이다. 그런데 요즘은 CP에서 물 보충하느라 잠시 머뭇거려도 쉬어가는 선수는 보기 드물다.

 

 

너무 힘들면 만사가 귀찮고 입맛이 없다. 체력의 한계는 외부환경보다 어깨를 찍어 누르는 배낭의 하중 때문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하루 2천kcal 열량이 포함된 7일치 식량과 생존을 위한 나침반, 칼, 라이터, 안티배넘 펌프, 응급세트 킷, 침낭, 깜박이, 랜턴, 서바이벌 블랑켓, 선크림, 방풍재킷 같은 필수장비와 매트리스, 카메라, 핸드폰, 보조 배터리, 슬리퍼, 코펠, 방한모, 치약과 칫솔, 여벌의 옷과 양말 같은 선택장비를 레이스 기간 내내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어기면 페널티를 받거나 실격될 수 있다.

 

 

종일 달리다 캠프에 들어오면 2ℓ 물통 3개를 받아들고 배정된 텐트로 찾아간다. 첫날부터 물집이 잡히고 어깨가 무너져 내린다. 그렇다고 누워만 있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온몸에 찌든 흙먼지와 소금기를 닦아내고, 발가락 물집도 치료해야 한다. 오늘의 강평과 내일 코스에 대한 브리핑도 들어야 한다. 숨 돌릴 겨를이 없다. 내일 레이스에 필요한 식량을 따로 챙기고, 장비도 재정비해야 한다. 체력 싸움이다. 저녁도 잘 챙겨 먹어야 하다. 먹히지 않으면 우겨넣어야 한다. 그래야 내일 또 달릴 수 있다. 물론 취사연료는 마른 낙타 똥이나 잡목이 제격이다. 스트레칭도 빼놓을 수 없다.

 

 

석양이 붉게 물들면 금세 캠프 주변에 어둠이 깔린다. 한숨 돌릴 여유가 온다. 오늘 캠프에 무사히 들어온 것에 감사하고 내일 레이스를 떠올린다. 이제 시작인데 귀국길과 일상의 단면을 상상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내게 묻기도 한다. 절대 고독에 빠지면 잠을 설치지만 피로가 엄습할 때 나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다. 사막의 하루가 길고 고단하지만 어디 일상만 할까. 사막의 환경이 위험하지만 어디 우리 사는 사회만 할까. 사막을 달리는 게 힘들지만 어디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 할까.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며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으며, ‘제31회 청백봉사상’과 ‘2013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상했다.

강연(명강사 제128호, 한국강사협회)과 집필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블랙야크 셰르파, 아츠앤컬쳐 편집위원, 돈키우스특강 고문 그리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 gskim3@gangbuk.go.kr ▪ www.facebook.com/gski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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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8 [10:30]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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