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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기록36] 터미널 - 우유니사막 레이스 2(The Ultra BOLIVIA Race)
 
김경수 오지레이서 기사입력  2018/01/20 [01:07]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며칠 전 영화 <터미널> 2004년도 작품을 보다 불현 듯 떠오른 자문이다. 미국 뉴욕 공항에 도착한 주인공 나보스키(톰 헹크스)는 입국심사대에서 여권이 무효가 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 바람에 오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주인공이 공항에서 9개월을 지내며 겪는 이야기인데. 어눌한 영어, 천진난만한 톰 헹크스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내게 던진 너무 큰 질문에 답을 내놔야 했다. 어쩌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그리고 머릿속에 몇 해 전 다녀왔던 우유니사막의 여정이 오버랩 됐다.

 

▲ 영화 <터미널> 화면 캡쳐 

 

하필 지구 반대편의 우유니사막이라니. 이제껏 이보다 더 먼 곳으로의 도전은 없었다. '그래도 염려할거 없어. 다 사람 사는 곳이잖아!', '잘 해낼 수 있어?' 2014년 6월, 나를 격려하며 인천 공항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미국 LA를 거쳐 6월 19일 밤 11시 50분, 중간 기착지 페루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20분에 볼리비아 라파즈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본진과 합류하면 된다. 그런데 황당하게 리마 공항 환승장에서 꼼짝없이 만 하루를 보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환승장 주변을 이 잡듯 살피다 아침을 맞았다. 오전 8시, 어느새 탑승시간이 두어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일찌감치 탑승구 앞에 자리를 잡았다. 몇 시간 후 라파즈에서 만날 운영진과 선수들을 떠올리며 눈을 붙였다. 그런데 누군가 흔드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전 10시 30분이 훌쩍 넘었다. Oh my God! 탑승시간이 이미 지나 버린 것이다. 창밖을 보니 내가 타고 있어야 할 비행기가 공항 상공에 떠 있었다.

 


영화 <터미널>에서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보스키는 공항 TV를 통해 고국 크라코지아 정부가 쿠데타로 소멸됐다는 것을 알고 망연자실 한다. 국적이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주인공은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고국에도, 미국에도 들어갈 수도 없는 무정부 국가의 무국적자로 뉴욕 공항에만 머물러야 했다. 졸지에 혈혈단신 천애고아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존에 필요한 영어와 공항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며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낸다.

 


나보스키는 타고난 손재주로 공항 리모델링 공사를 따내고 친구도 사귀며 닥친 현실에 적응해 갔다. 한 여승무원을 만나 로맨스도 키웠다. 공항에서 우여곡절의 세월을 보내지만 그는 여전히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고국의 쿠데타가 종식됐다는 소식과 함께 아버지 소원을 위해 뉴욕 어느 레스토랑에서 재즈 색소폰 연주자를 만난다. 그리고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는데. 그의 기다림은 조금 남달랐다. 자신이 처한 형편을 인정하며,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도적 기다림이었다.

 

 

항공사 직원마저 모두 철수한 리마공항의 라파즈행 탑승구 앞은 휑했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거의 방전됐고, 와이파이는 터지지 않는다. 말도 안 통했다. 내 짐은? 기온까지 떨어져 몸까지 으슬으슬했다.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다 고개를 떨군 채 발길을 돌렸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마침 TV에서 이탈리아 대 코스타리카의 월드컵 경기가 중계됐다. 코스타리카가 넣는 극적인 골에 환승장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지금 겪고 있는 황당한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에만 골몰해야 했다.

 


고심 끝에 지난밤에 봐두었던 항공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내 자초지종을 들은 직원은 되래 나를 진정시키고, 오늘 저녁 11시 50분에 라파즈행 한 편이 있으니 염려 말라며 짐도 공항에서 보관중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휴~ 극적으로 사태가 진정되고 나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리마공항에서 14시간을 더 버텨야 했다. 꼬박 이틀 동안 대륙과 국가를 넘나들며 비행기와 공항에서 지새다 천신만고 끝에 라파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비행기는 라파즈를 경유해서 산타크루즈까지 간다.’ 라파즈 공항에서 착오 없이 내려야 했다. ‘정신 바짝 차리자. 또 잠에 빠졌다가는 진짜 끝장이다.’

 


기다림에는 늘 두려움이 공존한다. 때가올지 안 올지, 무모한지 유익한지,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사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보스키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뉴욕 공항에 홀로 남아 기약 없는 시간을 보냈다. 시간과 싸우는 동안 그는 어떤 요행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상황에 적응해 갔다. 가장 인간적인 밑바닥의 진실함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고립무원 속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웃음을 찾았다.

 

 

나보스키가 뉴욕 공항을 빠져나올 때 하얀 눈발이 그를 환영했지만, 나는 다음 날 새벽 2시 30분, 4100m에 있는 라파즈 공항에서 몇 발작 떼기도 전에 고산병을 맞았다. 그리고 곧바로 남쪽으로 550km 떨어진 우유니로 이동해 5박 6일 동안 4천m가 넘는 알티플라노 고원지대와 우유니 사막 171km을 달렸다. 토한 음식을 다시 씹어 삼키며 달렸다. 태양의 열기와 혹한과 싸우며 달렸다. 달릴수록 물집이 터지고 피부가 익어갔다. 지구의 끝, 경계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면 나는 우유니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가올 미래도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듯 기다림도 세월에 묻혀 추억이 된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기다림 속에 희망을 만났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달렸던 우유니사막의 기억보다 리마공항에서의 하루가 더 생생하다. 아픈 기억까지도 내 삶의 보석이 되어 떠오르는 것이 고맙다. 훈훈한 영화 <터미널>에서 나보스키는 명대사를 남겼다. “크라코지아는 두렵지 않아요. 이 방이 더 무서워요. 나의 고국은 두렵지 않습니다.” 긍정의 아이콘, 따듯한 남자 나보스키도 힘들었던 공항생활 보다 고립 자체가 더 힘들었던 모양이다.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며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으며, ‘제31회 청백봉사상’과 ‘2013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상했다.

강연(명강사 제128호, 한국강사협회)과 집필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블랙야크 셰르파, 아츠앤컬쳐 편집위원, 돈키우스특강 고문 그리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 gskim3@gangbuk.go.kr ▪ www.facebook.com/gski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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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20 [01:07]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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