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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기록35] 나눔은 ‘선뜻’보다 ‘고민 끝에’ - 아타카마사막 레이스2(Atacama Crossing)
 
김경수 오지레이서 기사입력  2017/11/24 [01:40]

명절 때마다 고속도로를 꽉 메운 귀성차량 틈에서 몇 시간씩 시달려도 때가 되면 다시 그 대열에 껴야 마음이 편한 객지 생활자처럼. 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때가 되면 사막과 오지로 가야했다. 처음부터 알지는 못했지만 극한에서 만난 대자연의 장엄함이 내 삶의 동력이 되었고, 나를 서서히 변화시켰다.

 

 

그렇게 매해 사막과 오지를 달리면서 나이를 먹었다. 나와 동갑내기인 브래드 피트는 2005년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를 같이 찍던 안젤리나 졸리와 사랑에 빠져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강 하나를 건넜다. 나도 그 해 시각장애인 이용술의 낙타가 되어 고비사막을 횡단 한 일은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강을 건넌 셈이다. 브래드 피트의 10년이 비주얼에서 연기파 배우로 변했듯 나의 10년은 직장인과 모험가라는 두 가지 인생이 공존한 시간이었다.

 


논어 술어편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들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좋은 점은 가려서 따르고 나쁜 점은 살펴서 자기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사막이나 일상이나 다를 바 없듯 사막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도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 깨달음에 관한 첫 번째 기억은 2006년 7월, 다시 용술씨의 손을 잡고 간 남미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상에서 별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서 전 세계 전체물리학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곳, 붉은색 흙과 수만 년 전 지구의 지각대변동으로 융기된 지형이 만들어낸 기괴한 분위기가 마치 사람이 살수 없는 낯선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게다가 한국과 지구 정반대쪽 칠레의 7월은 건조한 대기와 살을 에는 한겨울 추위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134명의 출전 선수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사하라사막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왕후라면 고비사막은 힘든 노동에 손발은 거칠지만 순박한 미소를 지닌 시골 아낙네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타카마사막은 날카로운 검을 가슴에 품은 서늘한 눈매의 검객 같은 느낌을 줬다. 5박7일 간의 260km 대장정은 하늘과 맞닿은 해발 4,288m에 위치한 마추카 마을에서 시작됐다.

 

 

보통 사막 레이스 첫날은 워밍업 차원에서 살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지형의 생김새 그대로 첫날부터 무지막지했다. 레이스 거리 36km에 4천 미터의 고산지대와 급경사의 협곡을 따라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수십 개의 강물을 4.5km나 지나가야 하는 살인적인 코스였다.

 

 

오후 5시부터 해가 저물더니 순식간에 어둠이 휘감았다. 기온도 급격히 떨어졌다. 롱데이도 아닌데 어둠을 가르기 위해 헤드랜턴을 켜야 했다. 어둠만이 아니라 얼음같이 차가운 강물을 첨벙이며 전진해야 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모두 저체온증이 올수 있었다. 무엇보다 체온 보호가 급선무였다. 가혹한 대자연 앞에 우리는 너무도 무기력 했다.

 


곤두선 긴장과 거친 호흡을 고르기 위해 잠시 풀섶에 주저앉았다. 그때 뒤쪽에서 급격히 흔들리는 불빛 하나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일본 여자 선수 미애였다. 랜턴에 비춰진 그녀의 얼굴을 보니 입술은 벌써 파랗게 변했고 추위에 어금니까지 다닥다닥 거리며 떨고 있었다. 표정에서 우리마저 놓치면 조난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사태가 심각한 지경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일단 이 여인을 살려놓고 봐야했다.

 

 

생각 끝에 아껴뒀던 핫팩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극구 사양하는 그녀의 배에 간신히 붙였지만 옷이 물에 젖어 온기는 쉽게 살아나지 않았다. ‘으~’ 어쩔 수 없다. 수십 번을 망설이다 내 배낭을 뒤집어엎어 제일 밑에 깔려있는 침낭을 꺼내 그녀의 몸을 덮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경계의 눈을 푼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띄었다. 하지만 마냥 앉아 쉴 수만은 없었다. 기록경기인 만큼 자칫 제한시간을 넘기면 셋 모두 경기에서 탈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협곡 물에 뛰어들었다. 한 손은 용술씨의 손목을, 다른 한 손은 미애의 허리춤을 움켜잡고 20여개의 협곡 물을 더 건넜다. 그러다 맞닥뜨린 CP에서 의료진에게 미애를 인계했다. 그녀는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어둠속으로 멀어질 때까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결국 그녀는 그곳에서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밤 10시가 넘어 캠프에 도착한 우리는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일본 남자 선수들이 번갈아 가며 내 텐트 앞에서 깊게 고개 숙여 인사 했다. “아리가또! 아리가또!” 아마도 전날 밤 자국 선수를 보호해준 감사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 후 2010년 이집트 사하라사막 레이스에서 미애를 다시 만났다. 그 사이 결혼 한 그녀의 옆에는 함께 사막을 건너갈 듬직한 남편도 있었다. 4년 사이 그녀는 몰라보게 단단해져 있었다. 사막의 여전사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베테랑으로서의 여유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미애와 그녀의 남편은 아타카마에서 목숨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내게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나 정작 고맙다는 인사는 내가 해야 맞다. 그녀 덕분에 크게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아주 쉽게 한다. 나 역시 부모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그런 교육을 한다. ‘나눔’ 없는 ‘휴머니즘’은 없기 때문이다. 휴머니즘의 핵심이 나눔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나눔 정신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고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절실한 것을 더 절실한 사람에게 주는 것, 그래서 ‘선뜻’이라는 표현보다는 ‘고민 끝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게 진짜 나눔 정신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아타카마사막에서 미애를 구출하기 전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며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으며, ‘제31회 청백봉사상’과 ‘2013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상했다.

강연(명강사 제128호, 한국강사협회)과 집필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블랙야크 셰르파, 아츠앤컬쳐 편집위원, 돈키우스특강 고문 그리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 gskim3@gangbuk.go.kr ▪ www.facebook.com/gski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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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4 [01:40]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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