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뉴스 >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오지기록34]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김경수 오지레이서 기사입력  2017/10/23 [00:52]

고층 빌딩숲 사이 넘쳐나는 차량과 즐비한 쇼핑거리,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인파들로 북적이는 대도시는 늘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친다. 하지만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그늘진 도시 뒷골목에 발을 들이면 빈민들의 초라함과 인면수심의 사건사고가 판을 친다.

 

▲ 사진 = 한국사진기자협회


레드카펫 행사에 초대받은 명배우의 환한 웃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산악인의 포효, 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취업준비생의 감격에 찬 모습은 하나같이 환희가 넘치지만 그들이 지내온 과거의 이면에는 처절했던 인고의 실상이 배어있다.

 

▲ 사진 = 한국사진기자협회

 

레슬링 선수 김현우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부상투혼을 딛고 금메달을 땄다. 상처와 피멍으로 얼룩진 눈으로 헝가리의 타마스 로린츠를 이긴 것이다. 한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궈낸 값진 쾌거였다. 시상식에 올라선 그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하고 한국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그의 눈두덩을 보면 링 위의 투혼이 얼마다 처절했는지, 그의 목에 걸린 금메달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짐작이 간다.

 

▲ 사진 = 한국사진기자협회

 

나는 지난 15년 동안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들었다. 사하라사막을 시작으로 고비사막을 건넜다. 그랜드캐니언과 피쉬리버캐니언을 넘었다. 호주 대륙과 부탄 파로계곡을 넘어 우유니사막과 아타카마사막을 건넜다. 인도와 스리랑카 정글을 뚫고 히말라야 임자체 목전까지 올랐다.

 


그간 3,800km의 거리를 달렸다. 장도에 오를 때마다 매번 완주를 하고 왔지만 대가없이 피니쉬 라인을 밟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뿌린 만큼 거둔다. 체력 유지를 위해 때로는 억지로 운동을 하기도 하고, 회식자리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술잔을 피할 때도 있다. 휴가를 얻기 위해 상관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참가비와 항공료 등 경비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사막과 오지, 정글과 고지에서 겪는 여정은 더 가혹하다. 모래와 오아시스가 어우러진 사막의 석양 노을, 녹음 짖은 밀림과 거대한 협곡, 입이 떡 벌어지는 대자연의 장엄한 풍광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황홀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늘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원고립의 주로를 달리다 수시로 찾아오는 체력의 한계와 물집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다. 완주의 목전에서 피니쉬 라인을 향해 뛰어오는 한 컷 사진은 만인의 부러움을 사지만 사진을 확대해 보면, 검게 그을린 피부에 흙먼지와 땀으로 찌든 몰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0년 10월, 15명 한국 선수들을 이끌고 출전했던 이집트 사하라사막 260km 레이스는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였다. 단 한 명의 낙오 없이 출전자 모두를 완주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미션 완수 후 환호 속에 피니쉬 라인을 밟았지만 나는 그만 녹초가 되고 말았다.

 

 

쌓인 피로는 레이스 내내 발목을 잡았다. 레이스 4일과 5일째인 95km 롱데이 구간에서 졸음에 취해 휘청거리며 잠꼬대까지 하다 벼랑으로 떨어질 뻔 했으니 말이다. 출국 전 수개월 전부터 레이스 종료 마지막 순간까지 출전자들의 궁금증에 답해주고, 무사완주에 대한 책임감은 큰 부담이었다.

 

 

2013년 11월, 7년 만에 시각장애인 용술씨의 손을 다시잡고 캄보디아 정글 220km를 달렸다. 밀림 속 늪지에서 폐허가 된 유적지의 돌무더기와 지면 위로 드러난 거대한 나무뿌리를 수시로 넘나들어야 했다. 레이스 둘째 날부터 용술씨의 발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휘청거릴 때마다 그의 손목을 더욱 굳게 움켜잡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로를 인도하고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정도였다. 발바닥 전신으로 퍼져가는 그의 물집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술씨는 지옥 길을 뚫고 피니쉬 라인이 있는 시엠랩의 앙코르 와트로 들어섰다. 고난의 여정을 이겨낸 그의 모습은 너무 당당했지만 핏물로 가득한 물집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두 아들의 아버지이고, 아내의 남편이다. 회사에선 팀장이고 이따금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직장인이고 소시민이다. 사막과 오지에 서면 당차고 용감한 모험가 이지만 중년의 나는 종종 이유 없이 슬프고 외롭다. 주변에 을은 없고 온통 갑만 존재한다.

 

 

다 큰 아들 녀석의 눈치를 봐야하고, 가정보다 직장의 업무 일정에 맞추는 것에 익숙하다. 강인함 뒤엔 두려움이 있고, 웃음 뒤엔 씁쓸함이 있다. 늦은 저녁 밥상에 반주 한 잔을 이해 못하는 아내 눈총에 의기소침 하는 참 소심한 슈퍼맨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을의 입장인 건 변한 게 없다.

 


그래서 일까. 인생은 힘들고 늘 벅차다. 학업도 생계도 심지어 쉬는 것도 힘들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라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불평할 필요 없다.

 


현실을 견뎌내는 건 목표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일이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가족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도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고 만다. 최선을 선택할 것 같지만 차선을 택하고, 포기도 한다. 때론 포기도 지혜로운 선택일수 있다. 인간은 본래 처한 현실에 합당한 대안을 찾아내는 본능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지나온 인생은 한 편의 소설이고 각본 없는 드라마이다. 오래된 일을 회상하면 절로 웃음 짖고 눈이 감긴다. 추억에서 얻은 힘은 오늘의 시련을 이겨내는 용기와 선택의 원천이 된다. 사막과 오지를 달리기 위해 시간과 돈과 체력을 들였지만 나는 용기와 인내와 사랑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찰리 채플린)이라지만 진짜 소중한 순간들은 가까이서나, 멀리서 보나 감동이 짖게 밴 희극인 것이 분명하다. 피멍든 김현우 선수의 눈두덩이나, 발바닥 전체를 덮은 용술씨의 물집이 흉측해 보이기보다 그 모습에서 용기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며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으며, ‘제31회 청백봉사상’과 ‘2013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상했다.

강연(명강사 제128호, 한국강사협회)과 집필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블랙야크 셰르파, 아츠앤컬쳐 편집위원, 돈키우스특강 고문 그리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 gskim3@gangbuk.go.kr ▪ www.facebook.com/gskim3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7/10/23 [00:52]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포토] 오토앤 포토타임에 참여한 레이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