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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기록33] 당신의 손끝에 기적이 - 베트남 오지레이스(Ultra ASIA Race 2016)
 
김경수 오지레이서 기사입력  2017/09/26 [01:01]

<Ultra ASIA Race 2016>에 대하여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기는 2016년 3월 20일 베트남 북서부 라오스 국경 근처, Pa Co 지역에서 열린다. 구글 맵에도 지명이 뜨지 않는 낯선 오지 중 오지이다.

 

 

대회 홈페이지에는 레이스 거리와 참가비, 필수장비와 짤막한 현지 정보뿐이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고단함을 느끼는 순간 나의 뇌는 이미 도전과 모험의 상상을 넘어 베트남으로 향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정초부터 한반도가 뒤숭숭했지만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북한은 연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오지 레이스를 준비할 땐 국제정세나 천재지변, 전염병 같은 사건사고에 민감해진다.


일찌감치 출전 의지를 굳히기 위해 1월 27일 참가비 1,800유로를 프랑스 계좌로 송금했다. 그런데 파리의 북한 공작원과 내 이름이 똑같다는 이유로 프랑스 금융당국에 의해 돈이 묶여 한 동안 곤욕을 치렀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는 3월 4일에 발표됐지만 나는 이미 북한 도발의 직격탄을 맞았다.

 

 

14년째 사막과 오지를 달려왔지만 아직도 나는 내세울만한 비장의 노하우 하나 없다. 대회 때 마다 맞닥뜨린 현지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기도 하지만 어렵게 찾아들어가 합류한 레이스에서는 늘 운동부족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번 베트남 레이스는 3박4일 동안 습하고 타는 밀림과 산 능선을 따라 160km를 달려야했다. 11개국에서 19명의 선수들만 모여든 것으로 봐서 그들은 오지 레이스 분야의 베테랑인 것이 분명했다.

 

 

레이스 첫째 날 30km를 시작으로 둘째 날 48km와 셋째 날 35km 모두 힘겨운 고행의 길이었다. 더군다나 둘째 날에는 꼴찌로 캠프에 들어왔다. 주로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기증과 급격히 떨어진 체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냥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한 땀, 한걸음에 파키스탄 오지마을의 고아원 건립이 달려있어 포기도 쉽지 않았다. 끓는 자존심과 이기심이 나를 부추겼다. 매번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일으켜 세워 다시 주로에 섰다. ‘다시 힘을 내자. 비장한 마음으로, 조금 더 격하게.’

 

 

출정 한 달여를 앞두고 비영리재단인 ‘아름다운유산’의 우헌기 이사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 레이스를 통해 파키스탄의 고아원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다. 내전과 기아로 부모 잃은 고아들, 부모에게 버려져 영하의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그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땅히 홍보방법이 없어 SNS를 통해 두세 차례 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신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아이들의 한기를 녹여줄 온기가 필요합니다. 제가 베트남 오지를 달리면, 파키스탄 고아원 벽돌이 쌓입니다. 겨울은 갔지만 그들의 겨울을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작지만, 당신의 사랑은 큽니다. 당신의 손끝에 기적이 있습니다.”

 

 

지난 3일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달려왔다. 43km의 레이스 마지막 날 오후 2시, 30km지점 CP2까지 왔다. 멀게만 느껴졌던 결승선에 바짝 다가섰다. 들뜬 마음에 진행요원에게 결승선이 있는 마이 차우(Mai Châu)에서 하노이 공항까지 이동 시간을 물었다.

 

 

그런데 도로 사정이 안 좋아 4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는 뜻밖의 말에 그만 기겁했다. 남은 레이스 중에 자칫 길을 잃거나 부상이라도 당하면 귀국행 비행기를 놓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밤 11시 10분발 비행기를 타려면 늦어도 오후 4시까지는 결승선에 도착해야했다.

 

 

불안감에 두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34km 지점부터 다시 밀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속이 니글거리고, 입은 음식을 거부했다. 물도 먹히지 않았다. 허기는 온몸을 무기력하게 했다. 가슴이 조여 오고 두통이 되살아났다. 심장이 멎은 듯 두 다리는 더 이상의 전진을 거부했다.

 

 

‘여기 주저앉아도 나를 구해 줄 사람은 없다.’ 지금 포기하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게 뻔했다. 거친 숨을 고르며 기도했다. ‘나의 열정을 가상히 여기시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옵소서.’ 배낭을 풀어헤쳐 미친 듯이 아스피린을 찾아 입에 삼켰다.

 


밤 11시 20분,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비행기가 하노이 공항 활주로를 꿈틀거렸다. 시험을 치른 수험생처럼 마음이 후련했다. 누구든 인생에서 한두 번은 길을 잃는다. 하지만 잘못 들어선 길이 새로운 길이 되기도 한다. 오가는 여정이 유난히 힘들었던 베트남 레이스 대회였다.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지난 14년 동안 자존감을 위해 달렸다. 베트남에서는 파키스탄 북서부의 히말라야 산골마을, 카플루의 고아원 건립을 위해 달렸다. 얼마나 모금이 되었을까.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핸드폰 전원을 켜자 진동과 함께 그간 쌓인 메시지가 쏟아졌다. 반가운 소식도 많았다. 고아원 건립기금이 무려 5,774,000원이 모였다는 문자도 있었다. 10m에 1원, 1구좌에 16,000원. 160km의 오지를 달리면서 발톱이 죽고, 발바닥 물집이 커질수록 건립기금이 쌓인 것이다.

 


설렁탕 2그릇 혹은 탕수육 한 접시 가격의 1구좌 16,000원. 각박한 현실에서 적지 않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6월 말, 우헌기 이사장은 기부금 전액과 모든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을 챙겨들고 파키스탄 오지로 들어갔다.

 

 

어느덧 50대 중반, 세월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지만 그래도 견딜 만하다. 내일 이야기할 수 있는 오늘의 추억이 쌓였기 때문이다. 인생은 채우고 비움의 연속이다. 고난의 행군 속에 모두 비우고 나니 가장 단순한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무엇을 비우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고,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인생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진짜 나에게 소중한 것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채움도 비움도 없는 진정한 내 모습이 만들어지겠지. 오늘은 나에게 남은 인생 중에 가장 젊은 날이다.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며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으며, ‘제31회 청백봉사상’과 ‘2013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상했다.

강연(명강사 제128호, 한국강사협회)과 집필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블랙야크 셰르파, 아츠앤컬쳐 편집위원, 돈키우스특강 고문 그리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 gskim3@gangbuk.go.kr ▪ www.facebook.com/gski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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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26 [01:01]  최종편집: ⓒ 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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